몇 년 전 명절 때 처가댁에 식구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장인어른께서 내게 “자네 설교는 쉽게 해야 하네. 예수님께서도 설교를 청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하셨지.”라고 말씀하셨다. 평소에 말이 별로 없고, 조용히 듣기만 하던 나였지만 그날은 장인어른께 장난스럽게 “아버님, 예수님도 설교를 어렵게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 오병이어 이후에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 사람들이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요 6:60)’라고 말하면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습니다(요 6:66)’ 예수님은 따라다니던 사람들이 떠나갈 정도로 어렵게 설교하셨습니다.”라고 웃으면 말씀드렸다.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목사인 손윗동서 형님도 웃으면서 “맞습니다. 아버님.”하며 말해서 모두가 웃었던 기억이 난다.
평소에 나는 내 설교가 어렵다고 생각했었다.
한 예로, 미국 칼빈신학교에 유학 중인 친한 동생이 기말보고서에 대해 조언을 구했을 때, 마침 기말보고서 주제 본문이 내가 설교했던 본문과 같은 것이어서 내 설교문을 메일로 보내줬었다. 그리고 그 동생의 반응은 “형님 설교 이렇게 하면 성도들이 이해합니까?”였다. 한마디로 내 설교는 어렵다는 말이었다.
또 한 번은 내가 설교한 후에 다음날 남자 교역자 전체 모임을 담임목사가 지시했다. 남자 교역자 10명이 모인 자리에서 전날 내가 했던 설교에 대해서 한 마디씩 평하라고 했다. 그 자리에 대부분 교역자들이 내 설교가 길고, 성도들이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일화들은 그간 내 설교가 분명 어려웠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리고 올해 1월 사역지를 이동하면서 짧은 휴가를 천안에서 보냈다. 목사인 동서 형님이 내게 “설교 어렵게 하나?”라며 물어왔다.
그러나 그날 동서 형님의 질문에 나는 다르게 대답했다. “사실 설교를 좀 어렵게 한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어려운 설교는 논지가 없는 설교입니다. 전달이 뛰어난, 재밌는 예화와 유머가 많은 설교가 쉬운 설교가 아니라 논지가 분명한 설교가 쉬운 설교가 아닐까요? 논지가 없는 설교는 듣는 이로 하여금 피곤하게 합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설교를 할 때 분명한 설교 주제문장을 제시하고, 그 주제에 맞추어 논지가 분명한 설교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 설교가 길고 전달이 지루하지만, 분명히 쉬운 설교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동서 형님이 무릎을 치며 바르다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어쩌면 형님은 주일학교 학생도 다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설교를 하라는 일반적인 가르침을 주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대답을 듣고 쉬운 설교는 논지가 있고, 그 논지를 따라 명쾌하게 본문의 의미를 전달하고 삶에 적용하여 도전하는 것이라고 동의해주었다.
설교가 논지만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흔히 말하는 쉬운 설교는 논지가 분명한 설교라고 말하고 싶다.
목사가 되고 설교와 성경, 교회, 신학 등 많은 것에 대해 고민하고 어떻게 교회를 세워 갈 것인지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리고 그 고민을 함께 나누고자 블로그를 시작하고 생각을 나누고 싶다. 무조건 동의만을 구하지 않는다. 소통을 하고 싶다.
나와 같이 성경과 교회에 대해 고민하는 자들고 소통하며 교회를 세우는데 덕이 되면 좋겠다.